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버릇
사람은 누구나 자의적으로 해석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114에서 잘 못 알려 줬다고 해도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자리를 떠야 하는 것이 맞지 않냐고.
아직도 지난 토요일을 생각하면 절로 도리질이
쳐진다.
사건은 지난 목요일 새벽에 있었다.
남편이 자다 말고 느닷없이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왼쪽 배를 움켜쥔 채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가끔 장염으로 고생해 온 터라
지난밤에 먹은 매운 고등어조림 때문에
단단히 탈이 난 줄 알았지만
사태가 심각한 것 같아서 응급실 갔으면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급구 마다한 채 버틴 후
변을 좀 보더니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날 퇴근 후 회사 부근 한00 내과에 들렀는데,
이때 분명히 나는 우리 집 부근, 매듭병원에 들르라는
말까지 했었다.
하지만 습관이 무섭다고들 했던가.
수십 년을 문지방 닳듯 드나들었던 병원인 만큼
남편은 내가 한 말은 귓등으로 듣고
떡하니 한00 내과를 들러 약 처방을 받고
왔다.
"내가 장염 아니냐고 했더니, 장염이 맞대. 그러면서 뭘 먹었냐는 거야. 그래서
고등어조림이 맛있어서 연장 세 끼를 먹었다고 했더니, 너무 의외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라고."
"그럼, 막 엉망인 음식 먹고 자기가 탈 난 줄 알았나 봐..."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문제는 이날 밤 자다 말고 또 한 차례 난리가 났다.
변을 보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다며
배를 쥐어짜기를 근 한 시간가량
곤욕을 치렀다.
"이제 살 것 같다, 휴우! 자기, 아무래도 이 약 먹지 말아봐야겠어."
왜 안 그랬겠는가.
보고 싶은 변을 못 보게 하는 약을 먹었으니까.
우린 웹으로 왼쪽 배와 등 쪽이 아픈 경우에 대해 검색했다.
장염을 비롯해 방광염 신장암 결석 등 병들도 다양했다.
하지만 이미 대장암 진단 받은 지 2년 경과된 상황이라
다른 암으로 전이됐을까 봐, 남편과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날 출근한 남편은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우려해
장염약을 먹지 않으니까, 되려 통증도 없고
불편한 것도 없다며 두 번이나 전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 꺼림칙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나는 한00 내과에 들렀다가 처방을 잘 못 해주는 바람에
골든 타임을 놓쳐서 장폐색 수술까지 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금요일 하루 종일 별 증상 없어서 잠시 잠깐이었지만
그 모든 근심이 기우였나 싶을 정도로 놓인 마음으로
거뜬하게 퇴근해 들어온 남편과 룰루랄라
저녁 먹으러 나가려던 차
언제 들렀는지
화장실에서 나를 부르는 남편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자기!"
순간 온통 살얼음판 같은 것이 불안했다.
남편의 흰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오줌이 분홍색이야!"
"네?"
'대장암이 다른 암으로 전이되지나 않았을까, 신우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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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 그러니까 나이 많으신 원장님과
젊으신 원장님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이유가 뭘까?
남편 증상 듣자 마자 매듭병원 젊은 의사 선생님 말씀 왈.
"요관결석이에요."
"장염약 먹고 변이 안 나와서 한 시간 넘게 옆구리를
쥐어짰었거든요. 그래서 그 약 먹다 말았는데..."
"그러니 더 힘드셨겠죠. 소견서 써 드릴게요.
우리 병원에서는 요로결석 시술을 하지 않아서요.
엔비뇨기과 가시면 바로 시술하기 딱 좋은 위치고
크기도 4에서 8밀리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어이가 없었다. 다시 한번
구태의연한 의사들이 없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게 문제가 아닌 것은
그다음 날인 토요일, 회사 출근한 남편이
114에 엔 비뇨기과를 문의해서 전화 예약한 후
퇴근하고 와서 나와 함께 비뇨기과로 향했다.
"자기, 잘 봐봐, 앤더슨 비뇨기과라고 4층이라니까..."
"앤더슨 비뇨기과요?"
"응..."
앤더슨 비뇨기과는 한00 내과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소견서 제출과 함께 생년월일 기록한 후 순서에 맞춰
조영제를 맞았다. 20분 경과 후 결석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해서, 다시 또 조영제를 맞고
15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자기, 여기 기기는 흐려, 매듭병원에서는 또렷하게
결석이 보이는데..."
"뭐라고요?"
그때부터 이건 또 뭔 일일까? 머리끝이 쭈뼛 섰다.
남편도 뭔가 이상했던지 아침에 있었던 얘기를 꺼냈다.
"내가 114에 앤 비뇨기과 알려달라고 했거든.
그런데 계속 앤더슨이요,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나는
앤더슨 비뇨기과를 엔 비뇨기과라고 하셨나 보다고
생각했거든..."
"아휴, 참... 자기, 병원 잘못 왔어요. 그냥 가요."
"어떻게, 조영제 맞고 다 했는데..."
"자기, 목숨이 두 개예요, 그냥 일어나요."
"그냥 좀 있어봐..."
"아니, 참, 뭘 그냥 있어봐요... 말하고 가면 되지요..."
"자꾸만 더 불안하게 왜 그래, 그냥 있어 보라니까..."
사람 미친다는 표현, 아마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젊잖은 사람인 거 너무 잘 안다.
수선떠는 거 질색인 것도
오버하는 것도,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요지부동인 남편을 보자니 불안한 나머지 더는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프런트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리 병원 원장님께서도 잘 치료하시고
기기도 최신식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얼굴에 너무 걱정하고 계시는 것이 다
보여서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당사자까지 그냥
조영제도 맞아서 그냥 이곳에서 시술해야
한다는데...
성호경을 몇 번을 그었는지 모른다.
그냥 조영제가 흘러내려 결석 위치가
계속 잡히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한시바삐
노후화된 기계로 시술받는 일 없도록
이 병원에서 탈출하게 해 주십시오...
언제부턴가 남편에게 수호천사가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가 하면
나한테 하는 남편의 말이 잔소리가 아닌
남편을 빗대어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려니
여겨질 때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아무튼 그래서였을까.
왜냐하면 믿는 만큼 이뤄진다고 하잖던가!
몇 번의 조영제를 맞았음에도 우훗, 결석을
다 타고 흘러 결석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없노라고.
그래서 돈 삼만 원만 계산하고
마침내 내가 고대하던 대로
그야말로 그 병원에서 탈출했다고나 할까.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날 남편은 귀가 좀 따가웠으리라.
하지만 남편 인내심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내가 아니던가.
남편은 두 번 다시 나더러 자기를 혼자
내버려 두지 말라나, 참, 그러면서
114에 엔 비뇨기과 문의해 보라고...
"네, 엔 비뇨기과 좀 알려 주세요."
"네, 잠시만요. 앤더슨 비뇨기과죠?"
"아니요, 엔 비뇨기과입니다."
"아, 그럼, 서울엔 비뇨기과 알려드리면 되나요?"
"네."
남편이 속삭였다.
"자기, 그냥 끊어..."
내가 고맙다며 수화기를 내려놓자, 그제야
어떻게 114가 잘못할 수 있냐며, 그래서
114도 AI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해도
계속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남편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물론 그 전에 남편한테
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그 고생했냐고,
의사 선생님께서 엔이라고 하셨다면서
앤더슨을 엔이라고 하셨겠냐고
물론 서울이라는 명칭 때문에
지레짐작한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마침내 월요일인 오늘, 서울엔 비뇨기과에서
깔끔하게 요관결석 분쇄하고, 약 짓고
일주일 뒤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자기, 내가 의사 선생님께 여기 오게 된
경위부터 앞서 다른 병원 같다는 얘기까지
했잖아. 그래서 병원 이름 좀
바꾸셨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웃으시던데."
"헐, 여기, 서울대 나오신 분들이 하셔서
그런 건데..."
"아, 그렇네..."
"내가 정말, 앞으로 이런 경우 생기면
그냥 일어나기에요, 알았죠?"
글쎄, 모르겠다. 이곳 원장님께서도 매듭병원에서
정말 단번에 찾으셨던 게 맞냐고. 정말 찾기
어려운 곳에 있어서, 그곳에서 찍으신 CD 보고
저도 바로 그곳을 위시로 촬영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입소문, 댓글이 괜스레 달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신 장비를 비롯해서
젊은 의사 선생님 등등 운운하는 것도...
한마디로 배움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나 할까.
노후화된 기계처럼 전락한 듯한, ... 한 모습을 도대체
한두 번 목격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은 남편의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버릇 좀 지적하고
싶었는데, 걸리는 것이 남편뿐만이 아니었던 관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