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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오늘

보이스피싱

by 7sun 2024. 6. 1.

보이스피싱

 

몇 년 전이었다. 다소 여유가 있던 오전 시간이었다. 문자를 확인하던 가운데 무심코 내 눈에 띈 문자를 보고, 순간 이게 뭐지 싶었다. 삼성카드로 오십만 원 가까운 금액이 결재됐다는 문자였다. 나는 도무지 폰 문자에 찍힌 날짜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무슨 물건을 구매했다는 거야, 발끈 화부터 났다.

 

문자에 적힌 전화번호를 그대로 눌렀다. 통화가 되자, 상대방은 '삼성카드사 아무개'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러면서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었다. 몇 월 며칠 삼성카드로 물건 산 적이 없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확인해 보고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조금 지나 전화는 바로 왔다. 00동에서 옷값으로 삼성카드가 결재된 것이 맞다는 거였다. 아니 그 동네를 알지도 못하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하자, 그러면 검찰청 전화번호를 알려주겠다는 거였다. 나는 그쪽에서 알려준 번호로 전화했다. 바로 '00 지방 검찰청 수사과 검사'라는 거였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쪽 부서로 연락을 해 주겠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닿아 상황이 이러니까 빨리 처리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핸드폰 번호와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냐고 묻는 거였다. 나는 이때만 해도 의심은커녕, 신속하게 잘못된 카드 건이나 해결돼야 하겠기에 그대로 번호를 불러주었다. 그랬더니 끊지 말라는 거였다. 바로 그쪽에서 나의 폰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뭔가를 보냈다고 했다. 나는 착실히 그쪽에서 하라는 대로 핸드폰을 작동했다. 그러자 자동으로 나의 폰이 그쪽에서 다룰 수 있게 되는 거였다.

 

그제야 아뿔싸 싶었다. 순간, 보이스피싱이라는 생각이 팍, 드는 거였다. 나는 무조건 전화를 끊었다. 서둘러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불가능했다. 그때부터 심장이 두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택시를 콜 했다. 오 분 조금 지나서 도착한 택시를 타고, 자초지종을 말하면서 서둘러 경찰서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기사 아저씨가 자기 딸이 삼성전자에 다닌다는 거였다. 이런 경우는 본사 폰 서비스 센터에 가야 한다. 지금 손님 폰을 모두 그쪽에서 다운로드하는 중일 거다. 그러니까 내 폰이 어디 겨냐는 거였다. 정말 고맙다며 00폰이라고 말하자마자, 기사분께서 정신없이 속력을 내는 거였다. 나는 그 와중에도 어쩌죠? 모두 다운로드했으면, 애가 닳아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기사분께 물었다. 기사 아저씨는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았지만, 몇 분밖에 남지 않았을 거라며, 매장 다 왔다는 거였다. 택시비를 내지 않은 것 같은데, 빨리 뛰어가라는 거였다.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반 미친 사람처럼 비를 가르며 일 층으로 들어갔다. 사정 얘기를 하자, 이 층으로 올라가라고 했다. 그 넓은 사무실에 모두 업무 처리로 바빠 보였다.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하는 수없이 일단 나도 번호표를 뽑았다. 하지만 문제가 촌각을 다투는 문제인 만큼, 나의 얘기를 듣고 마침 한 분이 멀리서 손짓으로 빨리 폰을 꺼내보라는 거였다. 바로 건네주자, 이것들 벌써 다 끝나가는 것 같다며, 그런데 아직 작업 중인지 움직인다며, 나의 폰의 칩을 제거하기까지 단 몇 초였을까? 어찌나 급박한 상황인지, 칩을 서둘러 뺀다고 빼는데, 칩이 빠짐과 동시에 그 너른 책상에 내동댕이쳐지다시피 폰을 놔 버리는 거였다. 그러면서 숨을 몰아쉬는데, 후유! 하시며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통에 나의 터질 것 같았던 눈빛과 꽝, 부딪혔다. 한마디로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고나 할까?

 

칩을 일 초만 늦게 뺐어도 힘들었을 상황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대략 알려주자, 몇십 분 내 가능한 일인데, 딱 그 시간 다 돼서 칩을 뺐다고. 그러고 이젠 반대로 그쪽에서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될까 봐 나의 폰으로 접속을 시도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다만 나의 톡이나 문자들은 거의 날아가고 최근 거만 남아 있을 거라고.

 

보이스피싱!

글쎄, 나는 당하지 않을 거라고 했던, 아니 왜 그런 걸 당하지? 했던 나를 얼마나 반성했는지 모른다. 그 이후 두 번 다시 나는 내가 모르는 문자 같은 거에 신경을 끊기로 했다. 그것은 백 프로 사기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 아저씨!

나는 그날의 택시 기사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땐 너무 경향이 없다 보니까, 받아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에 가서 무작정 이런 아저씨를 찾는다고 할 수 없고. 그런데 지금 막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때는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마는. 콜했던 택시회사로 전화를 걸어 그런 아저씨 찾아봐 줄 수 있냐고

 

기적!

진즉부터 나는 기적을 믿고 있었다. 이날 나에게 일어난 일 또한 기적이었다. 마치 그때의 일들이 일렬의 파노라마처럼  좌르륵 펼쳐져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던 것들이 참,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짜 놓은 극본처럼 연출될 수 있었을까.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마치 신의 이끄심이 아니라면 그토록 고마우신 택시 기사분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으며, 서비스 센터에서의 기사분께서 그토록 지극 정성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폰의 칩을 제거하기에 혼신의 기운을 쏟아부으셨을까?

 

요즘 대한민국의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치솟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유튜브에서 우리 한국 사람의 끈끈한 정 문화는 사건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데 있어 기적과도 같은 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 사람에게서는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다는 거였다. 일 처리 역시 우리나라 사람의 빨리빨리 문화가 몸에 밴 근성인 만큼, 세계 어느 나라도 사건을 이토록 속전속결로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수준일 거라는 것. 이제는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다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여태 정이 많은 성격상 상대방 일이 무조건 내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으리라는 것.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그때 콜택시 기사 아저씨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따님이 삼성전자에 다닌다고 하셨던 콜택시기사 아저씨! 정말 고마웠습니다. 언제, 연락 닿으면 제가 꼭 이 은혜 갚겠습니다. 항상 좋은 기운으로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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