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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오늘

배려/정 열

by 7sun 2022. 5. 10.

배려/정 열

어쩌다 한 번씩 수면을 푹 취하고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다부지게 마음먹고 해야 할 일이 있을 경우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라는 것. 이미 계획은 머릿속에 모두 세워져 있다. 저녁 일곱 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 엉덩이 붙이고 두드리면, 나와의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그런데 물 한 컵 마시고, 거실의 나무들이 푸르게 잘 자라는 모습을 확인한 후, 서재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운동하러 나갔던  그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어...? 이게 아닌데...!' 속으로 말하기를 이삼 초였을까? 서재의 스위치도 켜지 않은 상태였다. 나와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바로 '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구나! 함께 사는 거였지!'라는 생각이 꽝, 둥치를 틀었다. 그런 마음과 함께 바로 "어, 왔네. 시금치나물 무쳐줄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너무 좋지." 미소는 이럴 때 나오는 요정들이었리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부간 말을 내뱉지 않고, 낮에는 그와 함께 볼 일 보고, 집에 들어와서는 밤새 작업에 올인하기를 반복하게 되자, 피곤해도 어쩔 수 없잖냐며, 속으로 견디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항상 맘이 일에 가 있었기에 몸은 몸대로 지치고 정신은 정신대로 지쳐 있었다고나 할까?

 

반복된 이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 밤을 새는 날이 잦을 수밖에. 결국 내 코가 석자라야, 서재에서 두문불출하게 됐다. 그제서야 더는 그도 나를 찾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날은 눈치껏 그가 알아서 저녁으로 라면이든, 밥이든 냉장고에서 해놓은 음식들과 함께 챙겨 먹곤 했으니까. 물론 뒤치다꺼리는 나의 차지였지만. 그런데 이마저도 점점 그에겐 서운하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얼마 전에 장 내시경 결과 용종 세 개를 제거했다. 그 가운데 한 개가 2 cm 가까운 거로 조직 검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암으로 판명이 됐다. 결국 종합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은 후, 혹여 뿌리가 남아 있을 여부 등을 살펴야 하기에 재검 날짜를 받아놓은 상태다. 이러다 보니, 본인은 겁도 나고 몹시 스트레스였던 모양이었다. 종양을 말끔하게 의사가 제거해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하는 수없이 신경이 그전보다 많이 쓰이기도 하고, 조금만 방치하는 것 같으면, 별로 그런 내색 않던 사람이었는데, 서운하게 느끼는 거였다. 자연 내가 잠을 덜 자더라도 낮에는 거의 그와 함께 하는 일이 잦아졌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내가 남들에게 말한다고 한들 혼자 열심히 글만 쓰는 교수나 작가들은 이해불가하리라는 것, 어제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느랴만 은. 더는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어차피 혼자 사는 것이 아닌 만큼 상대방을 간과해서는 결코 나의 현재 삶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없다는 것. 이게 나의 팩트는 아닐까? 

 

원래 성향은 바뀌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방과 함께 하는 한은,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이 시종일관 나의 눈에 밟히는 것을. 그러기에 처음부터 나는 상대방부터 챙기는 스타일이란 것을 수긍하고 볼 일이 아닐까. 그래서 만약, 이런 일로 하여금 하나라도 나의 일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그것은 나의 노력이 부족했음 또한 인정하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일에 올인하기 위해 낭비하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약속.

그렇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 바로 약속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누누히 강조했던 단어이기도 하고. 하지만 약속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 즉, 모든 것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그리고 나와의 약속은 전적으로 나 혼자만이 있을 때라야 가능한 것은 아닐까?

 

더 이상 나를 애닳아 하지 않으련다. 상대방부터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보듬고 보리라. 항상 깨달음이 있는 삶을 위해 무조건 나와 함께 하는 그를 위해 항상 좋은 기운으로 가득하길 기원하리라. 이런 나를, 가장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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