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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 )26

고독사가 고독사에게... 고독사가 고독사에게/박소미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주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 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 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 이 어둠 안쪽 냉기를 만진다 사금파리 녹여 옹기 만들 듯 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 아슴푸레 떨어지 는 눈물도 통로가 될까 북녘으로 넘어가는 해거름이 창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 내린다 살갗에 도착한 바람은 몇 만 년 전 말라버린 가의 퇴적, 불을 켜지 않아도 여기는 발굴되지 않는 유적이다 잊기 위해 다시, 죽은 자의 생애를 읊조려본다 그래 다시, 귀를 .. 2022. 5. 8.
냄비의 귀... 냄비의 귀/장이소 뜨거운 냄비의 귀를 잡다가 내 귀를 잡았다 순간이 순간에 닿는다 귀 하나 떨어진 양은냄비를 안고 골목을 지난다 삼삼오오, 얼룩이를 가리킨다 얼룩이는 번쩍번쩍 얼룩덜룩 하다 고흐는 왼쪽 귀를 자르고 왼쪽으로 들었을까, 어떻게 오른쪽을 들었을까 당신은 떨어진 귀를 버리지 못한 사람 뚜껑을 마저 잃고 배가 된 사람 이마는 당신이 키우던 물고기 떨어진 귀는 물고기의 어디쯤일까 귀를 기울인다 귀는 기울기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자른다 어디나 그런 귀 하나쯤 있다 절반이 절반에 매달려 가운데를 안고 돌면 떨어진 한쪽을 위해 두 배속 태엽을 감는다 꼬리에 풀리는 물무늬 아가미로 쏟아지는 물 살 삼킨 것들이 중심을 세운다 멱을 잡고 중심을 도는 것은 붙잡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 밖이 안을 떠받는다 쓸모.. 2022. 5. 6.
최초의 충돌... 최초의 충돌/김민식 나는 화면 너머의 테니스 경기를 본다 테니스라켓이 공을 치는 순간 무수한 공중이 한꺼번에 태어난다 고래의 힘줄 산양의 창자 얇게 저며진 살점으로 직공은 라켓을 짠다 종선과 횡선이 지나간 사이에 태어나는 눈 공중에 이름을 붙이는 최초의 노동이었다 천사를 체로 걸러낼 수 있다고 믿은 프랑스인이 있었다 축과 축의 직교 속에서 성령은 좌표를 얻었다 의심 속에서 의심도 없이 체의 촘촘한 눈을 세는 귀신의 눈은 비어 있다 눈알만 파먹힌 생선들이 부둣가에 쌓여 있다 백경白鯨의 투명한 수정체 멸종된 거대 수각류의 담석 전체를 상상하면 그것들은 차라리 허공이었다 한국의 산에는 호랑이 모양 구멍이 반드시 하나씩 있으며 돌탑 위에 둥근 돌을 하나 올려도 산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었고 무수한 왕의 안구가 .. 2022. 5. 6.
길찾기... 길찾기/김진환 차창 너머 낯선 가게들 잠시 눈 감은 사이에 낼릴 정류장을 지나쳤나 인터넷 지도로 확인한다 버스의 노선과 파란 점의 위치를 나는 길 잃지 않았다 인터넷 지도에 따르면 이 길은 내가 아는 길 매일같이 지나는 왕복4차로 거기서 나는 흰색과 붉은색 보도블록의 배열을 배웠고 넘어져 뒹굴며 무릎으로 손바닥으로 아스팔트를 읽었는데 보도블록의 배열이 다르다 아스팔트의 굴곡이 다르다 인터넷 지도를 확인한다 버스가 정거장 몇 개를 지나는 사이 파란 점은 아직도 아까 그 길에 있다 멀리 손 뻗어 손바닥의 살점 패인 자리를 보면 핏기와 죽은 피부의 흰빛이 구분되지 않는데 하차 벨 소리가 울린다 흰 버튼 위로 붉은 등이 들어와 있다 뒷좌석 사람이 내 뻗은 팔을 보고 대신 눌러 주었다며 손짓한다 버스에서 내려 아.. 2022.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