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 )26 여름의 돌... 여름의 돌/이근석 나는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 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형은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래가 아직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형을 들뜨게 했다. 미래는 돌 속에 있어, 우리가 아 직 살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번져있어, 우리가 미래로 가져가자, 그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 죽은 것 같아. 여름, 여름 계속 쌓아 올린 돌 속으로 우리가 자꾸만 죽었던 것 같아. 여기 가 우리가 가장 멀리까지 온 미래였는데 보지 못하고 우리가 가져온 돌 속으론 지금 눈이 내.. 2022. 5. 15. 노이즈 캔슬링... 노이즈 캔슬링... 우리는 한껏 미세해진 우리를 내려다보며 기내식을 먹었다 책을 뒤적거렸다 구식(舊式) 동물에 대한 흥미로 운 글을 읽었다 그것은 동물들이 있다,로 시작된다 유기인지 실종인지 자연발생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구식의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그들은 제각기 살고 있다 매일 똑같은 구절을 읽어줘도 너는 언제나 놀라워한다 연하게 와서 끊임없이 훼손되는 마음으로 침목(枕木)을 고른 적이 있다 비를 맞고 볕을 쪼이길 반복한 나무토막들 위로 뜨거운 기차가 규칙적인 소리 를 내며 달렸다 모든 것이 멈추면 아웃렛에 가서 새 셔츠를 사고 카페에 앉아 아주 뜨겁고 단맛이 나는 차를 마 셔야지 하다가 자신이 데려올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소음으로 지 워내는 방식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2022. 5. 13. 저녁의 집... 저녁의 집/유수진 아침이라면 모를까 저녁들에겐 다 집이 있다 주황빛 어둠이 모여드는 창문들 수줍음이 많거나 아직 야생인 어둠들은 별이나 달에게로 간다 불빛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건 다 저녁의 집들이다 한 켤레의 염치가 짝짝이로 돌아왔다 수저 소리도 변기 물 내리는 소리도 돌아왔다 국철이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설거지를 끝낸 손가락들이 소파 한 끝에 앉아 어린 송아지의 배꼽, 그 언저리를 생각한다 먼지처럼 버석거리는 빛의 내부 어둠과 빛이 한 켤레로 분주하다 저녁의 집에는 온갖 귀가들이 있고 그 끝을 잡고 다시 풀어내는 신발들이 있다 적어도 창문은 하루에 두 번 깜빡이니까 예비별의 자격이 있다 깜빡이는 것들에겐 누군가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다 매번 돌아오는 관계가 실행하는 수상한 반경엔 집으로 돌아오는 .. 2022. 5. 10. 단순하지 않은 마음... 단순하지 않은 마음/강우근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 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홀조를 띤 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 다. 병은 이리저리 옯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 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 2022. 5. 9.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