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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 )

설원...

by 7sun 2022. 5. 1.

설원/김 겸

 

끝없이 펼쳐진 눈밭이다

바람이 마른 모래처럼 일어난 눈가루를 휘몰아간다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斷指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그 설원의 원고지에 무제無題라고 할

너의 순일한 마음에 대해 쓸까

영어囹圄에 갇힌 너의 죄 없는 욕망에 대해 쓸까

새하얀 너를 앞에 두고 토해냈던

내 먹물 같은 설움에 대해 쓸까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그 설원의 원고지에 깨어나지 못한 너의

침묵에 대해 쓸까

이 쇠잔한 생에 표착한 너의 불운에 대해 쓸까

외로워, 외로워 말하는 가오나시 같이 끼니마다

밥을 보채는 너의 허기진 영혼에 대해 쓸까

정해진 과오를 범하고 정해진 책망을 듣는 너의 차갑게 굳어진 習에 대해 쓸까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하지만 내 가난한 가슴과 옹색한 문장으로는

너를 쓸 수 없다

너라는 이름의 눈밭은 오늘도 그만큼의

햇빛, 그만큼의 별빛을 받아 홀로 아득하다

너의 눈밭에 그물 같은 붉은 칸을 내려 한

미욱한 나를 연해 뉘우친다

아무도 미워해 본 적 없는 

아무도 시기해 본 적 없는

너라는 이름의 눈밭

저 깊고 아득한 너의 설원

 

202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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