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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오늘

발이 없는 새

by 7sun 2024. 5. 24.

 

언제부턴가 그녀는 발이 없는 새였다, 그런데

어느 해 이른 봄, 그녀가 자주 가곤 하던

북쪽에 위치한 청록색 화실 끝에서, 날개가

모두 부서진 채 철철 피 흘리고 있는 그를

목격하게 되었다, 하는 수없이 그녀는, 왼쪽 

날개 하나를 떼내어, 왠지 낯익은 그에게, 다신

상처 받거나 바람 불어도 흔들리지 말라고

꽝꽝 무쇠를 박아 달아줬다, 그때부터 그는

양수리 여행길에도, 백화점 귀걸이 사러 갈

때도, 발이 없는 그녀를 그의 마른 등에 업고

다녔다, 마지막 천국의 책방으로 가는 그녀의

동생에게 갈 때도 그는, 그녀를 목마 태우고 갈 

정도였다, 그런데 언젠가 한 번은 상황이 많이

나빴다, 따뜻한 곳으로 알았던, 그의 남쪽

나라에서 그녀는 구천구백 미터씩 뛰어오르며

달려드는, 그의 식솔들한테, 그가 보는 앞에서

송두리째 깃털이 뽑힌 채 문둥이가 되어

쫓겨났다, 왜냐하면 그에겐 너무 어린 

의붓자식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를 알게 된 것은, 늦은 가을 저녁

그러니까 바람이 몹시 불던 사천 년 전이었다

흠씬 비 비린내 진동하던 저녁이었는데

정말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길가 샛노란 은행나무에 기대어 발톱이 

기다란 피해 망상으로 구겨진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지금처럼 무릎에 팔걸이를 한 채

고개를 푹 떨구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당시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유도

모른 채, 얼굴이 노란 망령들한테 쫓긴

나머지, 두 손 높이 삽을 쳐들고 벼르고

있었던 참이었다, 마침 그때 땅바닥을

두드리며 바짝 따라붙는 노란 망령들을

간신히 피해 있는 그녀에게 그가 뛰쳐 들었던

것이다, 그 길로 그녀는 대책없이 발이 사라진

줄도 모른 채 비상했던 것 같았다, 왜냐하면

꿈이었으니까, 가시나무 새의 전설도 있잖던가

그런데 운명이란 쉬임 없이 날갯짓을 해야만 

한다면, 페가수스인들 버틸 수 있었을까 

 

결국, 꿈속에 목숨을 건 무지몽매한 그녀에게

품페이 최후의 날이 도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해 겨울, 그도 많이 지쳤는지, 그동안 그녀의

없던 발을 꺼내놓고 조심스레 자신의 다 헤진

날개가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 즉시 그녀는 연신 따라붙는 기다란 검은

뱀과의 헤일 수 없는 날들의 사투 끝에 마침내

그의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 해 늦은 봄 소풍놀이 갔을 때

목숨이나마 건졌으니까, 천만다행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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