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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오늘

만나다, 그를

by 7sun 2024. 5. 16.

 

장례식장 가는 오르막길이 낯설었다, 주춤

오던 길 뒤 돌아봤다, 낮게 드리워진 어둠 속

짙푸른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과 금성, 그리고

하나 더, 목성인가, 위성인가, , 눈에 들어온

셋의 하모니! 이 와중에, 나도 모르게 가방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무조건, 기회란

지나가면 그뿐인 만큼, 아름다운 것은 간직하고

보는 것, 차가 올라오는 것도 모른 채, 세 컷을

담은 후, 서둘러 한편으로 비켜섰다, 그리곤

천천히 내려가면서 장례식장 건물을 찾아봤다

마침 올라오고 있는 점잖아 보이는 중년의

남자분께, '여기 장례식장이 어디 있어요?'

내려오고 있던 이 길, 그러니까 처음 내가 가고

있던 대로 올라가서 오른쪽이라며, 본인도 가는

중이라고

 

마음은 이미 조의금만 내고, 인사만 하고 바로

나와야겠다고 세웠던 계획이었다, 그를 못 본

십 년이 훨씬 넘은 것보다, 갑자기 나에게 생긴

의료 사고 이후, 그 누구든 무조건 멀리하고픈

이상 증세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위기에 진창

약한 편이라, 그의 큰 여동생의 까맣게

반짝이는 보석 같은 눈빛을 발견한 순간

소심했던 마음과는 달리 와락, 반가라 해주는

수십 년 전, 학창 시절 때 봤던 따스한 그

눈빛에, 순식간에 떡 버티고 있는 큰 나무처럼

커져버린,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함! 내 나이와

한 살 많거나 적은 그의 동생들 역시 한결같이

반가라 맞아주는 바람에, 나 혼자만 졸였던

가슴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

어릴 때 친구처럼 지내던 은희 언니까지 함께해

얘기 삼매경에 빠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나중엔

은희 언니의 환하게 웃는 웃음소리에

장례식장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나 보다고

입을 가리며 깜짝, 놀라라 하는 그녀를 보며

급기야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문상객들의

발길에 자리를 비켜줘야 하나, 은희 언니가

혼잣말하는 것을 엿듣기까지 했지만, 나는 그

말조차도 들어오지 않은 양 담소 나누기 바빴다

왜냐하면 그의 동생들 넷과 그 동생 되는

식구들의 친밀함에 마치 꽃밭인 양 나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마침 잠시 들린 그의 반가움

넘치는 제스처, 발그레한 나의 왼쪽 뺨을 감싸

안은 그의 손, 나보다 나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은희 언니의 동공이 커지고 있음에도 너무

얘기 삼매경에 빠져 있던 나였기에, 한 번 눈길만

마주쳤을 뿐, "꼭 기다리고 있어야 해!" 이 말만

남기고 상주 자리 지키러 가는 그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함께 하고픈 마음이라는 것, 바로

전달되고도 남았던, 하지만 얘기하며 지낸 지

어느새 두 시간이 넘자, 은희 언니가 가야 할 것

같다고, 집까지 두 시간 넘게 걸린다고, 화장실이

급한 나는 또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나오는데

나보다 한 살 많은 그의 큰 여동생이, 시간

때문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은희 언니

말에, 나도 함께 가는 줄 알았던 모양인지

어쩌다 보니까, 연락 자주 하자고 인사하는

모양새가 연출되었고, 그때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말! 은희 언니는 나와 함께 나와, 택시

탈 때서야 "오빠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순간, 밀려드는 미안함, 아니 서운해할 그의

마음이 읽히는 것 같은, 왜냐하면 밤이라도 그가

알면 나는 차로 이십 분이면 되는 거리,

오해하지, 을 것도 같은, 하지만 사람의 인성은

변하지 않는 것, 이 정도면 됐지 싶은 마음에

새삼 언니가 고맙고, 따스함으로 넘쳐나는 그의

동생들이 고마웠다, 하지만 나만 모르고 있었던

그에 대한 학창 시절부터 군대 가서까지

여학생들에게서의 인기라니, 내가 오늘 들고 간

커다란 검정 가방 가득 차고도 남을 만큼

받았다는 팬레터들이라니, 그의 친구 되는

분이라며 들려줬던 , 그에 대한 너무 생소한

이야기들, 낯선 나머지, 그만 들려고 하는 서운함

하지만 다시 한번, 소설 <가시나무새>

랄프 신부와 오버랩되는 꼿꼿한 그 자세

하나만으로 그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어서

무조건 고마웠던, 나의 짝사랑! 그동안 나만

몰랐었나 봐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던, 요즘 핫한 웹 소설 속 남주가

당신이었다니요, 기다리라고 했던 말

정말 미안해요, 깜빡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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