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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오늘

미니멀 라이프/정 열

by 7sun 2022. 4. 27.

미니멀 라이프/정 열

그는 원래 버리는 것을 잘한다. 출근 후 집에 오면 낮에 버린 휴지통의 휴지부터 재활용 봉투에 넣기 바쁘다. 아침에 눈 뜨면, 또 간밤에 잠 안 자고 그녀가 서재며 주방이며 들러 버려놓은 휴지통부터 비운다고나 할까. 그런 후 운동하고 샤워를 하는 부지런한 성격의 소유자다.

 

자신의 옷도 조금만 낡거나 보푸라기라도 일면 버려지는 데는 가차없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옷을 잘 사는 편은 1도 아니다. 나중에 옷 입을 때마다 보면, 옷장에 걸려있는 몇 벌 되지도 않은 자신의 옷을 고르면서, 맨날 왜 이렇게 옷이 없지, 하는 식이다.

 

반면, 그녀는 그와 정반대라고나 할까. 옷부터 시작해서 구두, 가방은 물론, 낡은 필기도구 하나도 잘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물건에 미련이 많아도 너무 많다고나 할까.

 

옷을 하나 예로 들면, 몇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너무 많으니까 분명히 버리야지 라고 굳게 맘먹었는데도, 막상 버리자니, 나중에 다른 옷과 코디해서 입을 때 이날 버린 것을 후회하며 애닳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이 되곤 하는 거였다. 결국 그날 심사숙고 끝에 버려진 옷은 그 많은 장롱 속 옷 가운데 기껏해서 세 개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버리는 데는 완전 제로 수준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언젠가 한 번은 그녀가 감기로 고생하고 있을 때였다. 서둘러 그가 약국에 들러 증상을 말하고, 약을 사 왔다는 거였다. 저녁 무렵, 일어난 그녀는 그가 시킨 대로 밥부터 챙겨 먹었다. 입맛이 전혀 없었지만 그야말로 억지로 한술 뜬 거였다.

 

약을 먹기 위해 물 한 컵을 들고 약을 가지러 복도 쪽으로 갔다. 약 봉투가 보이질 않는 거였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고나 할까. 분명, 자다가 화장실에 가면서 꼬깃 해진 약 봉투를 두 눈으로 확인했던 것이었으니까. 하는 수없이 주방이며 서재며 식탁, 심지어 옷방까지 재차 찾아봤다.

 

영문을 모른 체 맥이 빠져 있을 무렵, 그가 돌아왔다. 혹시 복도에 자기가 놔둔 약봉지 치웠냐고? 지나가는 말로 넌지시 물어봤을 때였다. 그거 운동 가기 전에 쓰레긴 줄 알고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다른 쓰레기들과 한데 넣어서 버렸다는 거였다. 

 

한마디로 버리는 데에는 일말의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나 할까?

 

한때 미니멀 라이프가 화두였던 때가 있었다. 그 이후 요즘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가끔씩 거실을 오며 가며 할 때 그가 보고 있는 TV 연예프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과연 이토록 버리는 것에 열심인 그와 버려지는 것에 진창 소극적인 그녀...

 

어제 24시간 잠을 꼬박 샌 결과, 완전 신체 바이오 리듬과 루틴과 그외 등등이 흔들흔들이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 버려지는 거에 그녀만큼 아니 그녀와 거의 흡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수필 한 편을 읽자, 버려지는 거 앞에, 마치 날개달린 것처럼 적극적인 그로 인해 자신이 사다놓은 약이라는 사실도 잊고 쓰레기로 착각했던 그를 보고 그때 아픈 것도 잊고 콜록거리며 빵, 터졌던 때가 떠올랐다고나 할까.

 

아마 내일이나 되어야 모든 것이 회복되리라. 항상 밤을 새면 족히 3일 헤맸으니까.

 

하지만 이런 시간 역시 그녀는 너무 고맙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무 기억이라도 소환되는 순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뚝뚝 푸른물이 떨어져 하염없이 가슴 한 켠이 젖어오기 때문이다. 정말 모처럼 밤다운 밤 시간에 굿나잇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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