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수2

국수 국수/박은숙 허리가 굽은 노인이 식당 구석진 자리에 앉아 국수 한그릇을 시킨다 네명의 자리에 세명을 비워두는 식사 아마도 매 끼니를 빈자리들과의 합석이었을 것 같다. 잘 뭉쳐져야 여러 가닥으로 나뉠 수 있는 국수, 수백번의 겹이 한뭉치 속에 모이는 일, 뜨겁게 끓인 다음에 다 시 찬물에 식혀야 질겨지는 음식, 그 부피를 많이 불리는 음식은 힘이 없다지만, 그래서 여럿이 먹어도 한가지 소리를 내는 국수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저 노인의 슬하는 이남 삼녀의 망종(亡種) 꽃핀 곳 없는 행색이지만 한때는 다복했었을 것이다. 잇몸으로 끊어도 잘 끊어지는 빗줄기 같은 국수, 똬리를 튼 국수를 젓가락으로 쿡 찔러 풀어 헤친다 치아도 없는 노인이 먹는데 후루룩, 비 내리는 소리가 난다 비 오는 날 마루에서 들리던 .. 2022. 4. 25.
모천... 모천/김철 청계천 골목 어디쯤 모천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양양의 남대천이 아닌 뜨끈한 국수를 파는 국수 집 근처 어디라고 국수 발 같은 약도 적힌 메모를 들고 찾아간 미물도 명물로 만든다는 그 만물상 주물 틀에서 갓 나온 물고기 몇 마리 사왔지 수백 마리 수천 마리 붕어빵 구워낼 빵틀 파릇한 불꽃 위를 뒺ㅂ다 보면 세상의 모천을 찾아오는 물고기들 다 중불로 찍어낸 붕어빵 같지 한겨울 골목 경제지표가 되기도 하는 천원에 세 마리, 구수한 해류를 타고 이 골목 입구까지 헤엄쳐 왔을 따뜻한 물고기들 길목 어딘가에 차려놓으면 오고 가는 발길 멈칫거리는 여울이 되는 것이지 파닥파닥 바삭바삭 물고기 뛰는 모천의 목전쯤 되는 영하의 파라솔 아래 엄마가 하루 종일 서 있던 그곳 -2021년 16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 2022.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