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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 )

국수

by 7sun 2022. 4. 25.

국수/박은숙

 

  허리가 굽은 노인이

  식당 구석진 자리에 앉아

  국수 한그릇을 시킨다

  네명의 자리에 세명을 비워두는 식사

  아마도 매 끼니를 빈자리들과의 

  합석이었을 것 같다.

 

  잘 뭉쳐져야 여러 가닥으로 나뉠 수 있는 국수, 수백번의 겹이 한뭉치 속에 모이는 일, 뜨겁게 끓인 다음에 다

시 찬물에 식혀야 질겨지는 음식, 그 부피를 많이 불리는 음식은 힘이 없다지만, 그래서 여럿이 먹어도 한가지

소리를 내는 국수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저 노인의 슬하는

  이남 삼녀의 망종(亡種)

  꽃핀 곳 없는 행색이지만

  한때는 다복했었을 것이다.

 

  잇몸으로 끊어도 잘 끊어지는 빗줄기 같은 국수,

  똬리를 튼 국수를 젓가락으로 쿡 찔러 풀어 헤친다

 

  치아도 없는 노인이 먹는데

  후루룩, 비 내리는 소리가 난다

  비 오는 날 마루에서 들리던 엄마의 청승같이

  뚝뚝 끊던 빗소리,

  맑은 물에 헹군 국수발 같은 주름이

  입안에 가득 고인 빗소리에

  바람이 흩날리며 든다.

 

 

-202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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