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870 핑고... 핑고/황정현 극지의 순록은 우아한 뿔을 가졌다 거친 발굽으로 수만 년을 걸어왔다 죽은 자식을 동토에 던지며 발길을 돌려야 했고 비틀걸음으로 얼음산을 넘어야 했고 살점을 떼어 어린 자식의 배를 불려야 했고 뿔을 세워 침입자에 맞서야 했고 온몸을 쏟아 무리를 지켰다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치열한 싸움에서 늘 이기고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무덤을 등에 지고 돌아왔다 무덤은 살고 당신은 죽었다 무덤 속에서 얼음이 자라고 있다 얼음은 흙을 밀어 올려 산이 될 것이다 얼음의 계절이 오면 순록은 바늘잎나무숲으로 순례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당신의 길이 보인다. -2021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2022. 4. 23. 붕어빵 안에는 배고픈 고래가 산다... 붕어빵 안에는 배고픈 고래가 산다/조효복 아이의 웃음에선 생밀가루 냄새가 났다 접시 위에 수북이 담긴 고기를 자랑하는 아이 가쁜 숨을 내쉬며 조그마한 얼굴이 웃는다 콧등을 타고 오른 비음이 아동센터를 울린다 해를 등지고 앉은 언니는 아빠를 닮았다 그늘진 탁자에는 표류 중이던 목조선 냄새가 비릿하게 스친다 구운 생선을 쌓아두고 살을 발라낸다 분리된 가시가 외로움을 부추긴 친구들 같아 목안이 따끔거린다 흰 밥 위에 간장을 붓고 또 붓는다 짜디짠 바람이 입 안에 흥건하다 훔쳐 먹다 만 문어다리가 납작 엎드린 오후 건너편 집 아이가 회초리를 견딘다 튀어나온 등뼈가 쓰리지만 엄마는 버려지지 않는다 매일 다른 가족이 일기 속에 산다 레이스치마를 입은 아이가 돈다 까만 유치 㓜齒를 드러낸 아이가 수틀을 벗어난 실처럼.. 2022. 4. 23. 책등의 내재율... 책등의 내재율/엄세원 까치발로 서서 책 빼내다가 몇 권이 기우뚱 쏟아졌다 중력도 소통이라고 엎어진 책등이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배슥이 꽂혀와 반짝인다 정적을 가늠하며 되비추는 만화경 같은 긴 여운, 나는 잠시 일긋일긋 흔들린다 벽장에 가득 꽂힌 책제목 어딘가에 나의 감정도 배정되었을까 곁눈질하다 빠져들었던 문장을 생각한다 감각이거나 쾌락이거나 그날 기분에 따라 수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책 한 권, 이 오후에 봉인된 것인지 추스르는 페이지마다 깊숙이 서려 있다 벽 이면을 온통 차지한 책등 그들만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즐기는 안쪽 서늘한 밀착, 이즈음은 표지가 서로의 경계에서 샐기죽 기울 때 몸 안의 단어들이 압사되는 상상, 책갈피 속 한 송이 압화 같은 나는 허름하고.. 2022. 4. 23. 이와 같다면, 내 마음이... 이와 같다면, 내 마음이... https://youtu.be/QP_0LF5wJgE 2022. 4. 23. 이전 1 ··· 182 183 184 185 186 187 188 ··· 2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