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등의 내재율/엄세원
까치발로 서서 책 빼내다가
몇 권이 기우뚱 쏟아졌다
중력도 소통이라고 엎어진 책등이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배슥이 꽂혀와 반짝인다 정적을 가늠하며
되비추는 만화경 같은 긴 여운,
나는 잠시 일긋일긋 흔들린다
벽장에 가득 꽂힌 책제목 어딘가에
나의 감정도 배정되었을까
곁눈질하다 빠져들었던 문장을 생각한다
감각이거나 쾌락이거나 그날 기분에 따라
수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책 한 권,
이 오후에 봉인된 것인지
추스르는 페이지마다 깊숙이 서려 있다
벽 이면을 온통 차지한 책등
그들만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즐기는 안쪽 서늘한 밀착, 이즈음은
표지가 서로의 경계에서 샐기죽 기울 때
몸 안의 단어들이 압사되는 상상,
책갈피 속 한 송이 압화 같은 나는
허름하고 시린 과거이거나 목록이다
나는 쏟아진 책을 주워 천춘히 넘겨본다
벽은 참 출출한 비결이다
-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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