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으로 끊어도 잘 끊어지는 빗줄기 같은 국수1 국수 국수/박은숙 허리가 굽은 노인이 식당 구석진 자리에 앉아 국수 한그릇을 시킨다 네명의 자리에 세명을 비워두는 식사 아마도 매 끼니를 빈자리들과의 합석이었을 것 같다. 잘 뭉쳐져야 여러 가닥으로 나뉠 수 있는 국수, 수백번의 겹이 한뭉치 속에 모이는 일, 뜨겁게 끓인 다음에 다 시 찬물에 식혀야 질겨지는 음식, 그 부피를 많이 불리는 음식은 힘이 없다지만, 그래서 여럿이 먹어도 한가지 소리를 내는 국수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저 노인의 슬하는 이남 삼녀의 망종(亡種) 꽃핀 곳 없는 행색이지만 한때는 다복했었을 것이다. 잇몸으로 끊어도 잘 끊어지는 빗줄기 같은 국수, 똬리를 튼 국수를 젓가락으로 쿡 찔러 풀어 헤친다 치아도 없는 노인이 먹는데 후루룩, 비 내리는 소리가 난다 비 오는 날 마루에서 들리던 .. 2022. 4. 25. 이전 1 다음